빌라도는 유대인과 로마의 사이를 고려하여 죄를 찾지 못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웠다.
그리고 "이정도면 됬지? 이제 놓아준다?" 라고 유대인들에게 말하니깐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한다.
이때도 빌라도는 여러가지 갈등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결국은 십자가 형을 선고한다.
십자가 형을 선고받고 메달려계실때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과 속옷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말인 즉슨 예수님은 전라 나체로 십자가에 올라가셨던 것이다.
통상 영화나 기타 그림등을 보면 속옷은 그래도 입혀져 있지만 사실은 전라 나체였던 것이다.
정말 몸에 하나 걸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는게 무슨기분이셨을까.
그 와중에도 수치스럽다는 느낌보다는, 하나하나가 말씀의 성취를 이루기위해 행동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게 성경에 쓰여진대로 응했더라. 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하나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리셋할 순 없지 않은가? 계획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란 사실 쉬운일이 결코 아님에도 성경에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다. 정말 놀랍다.
예수님과 2명의 죄수가 메달리던 날은 유대인들의 준비일이였다고 한다. 아마 유월절을 대비하는 날 즈음이였던 것같다.
때문에 십자가 형의 빠른 마무리를 위해, 나머지 죄수들은 "다리를 꺾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다리를 둔기로 부러뜨리게 되면 영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때 죄수들이 "으아악"한것과는 다르다.
내가 부러져봐서 안다.
정말 그 소리는 쥐어짜서 안에서 부터 나오는 고통의 소리다. 진짜 그 고통은 못견딘다. 이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도 안되는 고통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누워서 다리에 힘이 안 실린 상태에서 부러지면 딱 부러지는 순간에만 아파서 참는게 가능하겠지만
십자가 형은 자신의 몸무게를 오롯이 발목쪽, 손목쪽의 못박힘으로 지탱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 아픔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아마 밧줄을 이용해서 그 부위 근처를 묶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딸랑 손목 각 하나씩, 발목에 딱 하나로 박으면 아마 내생각엔 못 박은 부위가 정말 손쉽게 찢어져서 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라는 표현 안에는 여러가지가 느껴졌다.
신약 4복음서의 전반을 보면 "성경을 이루려함이니라"라는 표현이 진짜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하나하나 스테이지가 클리어되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상황에서 어떠셨을까.
어쩌면 우리는 상상만 하는것일수있겠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알고계셔서 유다를 통해 팔려가시기 전에는 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것처럼 기도하셨을지 않을까?
왜 기도하셨을까? 를 생각해보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때, 혹은 직면 이전에 우리들은 각자 무언가 하나님께 범죄함이라던지 옳지 않은일을 선택하게 되는 기로에 놓이는 상황이 정말 많다. 매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걸 내가 스스로 결심했다고 해낼 수 있을까?
그런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는 있다 종종.
하지만 내막은 정말 당사자 외엔 알 수 없는법.
최소한에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할 수 없지만 해야하는 것을 두고 항상 기도를 해왔다.
나도 연약해서 나를 건지시더라도 내가 스스로 다시 올무에 빠지는 것이 매일 마다 있다.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기도 하니 더욱 기도를 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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