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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22.02.21 [열왕기상 18장] 오바댜와 엘리야의 행동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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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게 된 말씀을 평소에 많이 읽었었고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잘못생각했던것 같다.

 

첫번째

 

엘리야가 3년동안 과부와 아들의 집에 붙어있으면서 생활을 유지해왔다.

이걸보고 난 정말 놀라웠던것이 "아니 기근이여서 물도 없었을텐데 물 없이 3년간을 빵만먹고 살아왔단 말인가? 그 가족도 대단하고 엘리야도 어떻게 대변문제로 고생한건 없었나?"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나를 두고 실험을 해봤을때 1주 약간 넘게 빵같은걸 먹었을때 대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2주가 넘어가니 아주 스스로 고통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변이 너무 오랜기간 마렵지가 않아서, 때로는 대변이 설사여서, 때로는 대변이 진짜 염소똥마냥 나와서 등의 이유로.

하지만 무엇보다 삶을 유지해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두번째

 

"아합이 왕궁 맡은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라고 한다. 그 전에는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 백명을 죽이라고 할때 이들을 반씩 나누어서 굴에 숨기고, 먹이면서 살려두었다고 한다.

모르겠다. 나는 이런 선교사의 길을 접게되고 나의 길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것임을 하나님이 강렬하게 알려주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내 롤모델이다.

백명을 왕 몰래 숨긴다는것 자체가 엄청난 권력가이자 모략가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내가 원해서 권력가이고 모략가이기는 원하지 않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될 환경으로 나에게 부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 머리는 크게 좋지 않지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것같고 환경적으로.

더불어서 매일 백명씩 먹인다고 생각해봐라.

먹방 BJ들중 많이 먹는사람들은 혼자쓰는 식비가 한달에 700만원정도라고 하고, 우리 부부는 한달에 35만원정도를 쓴다.

그러면 50 * 35만원이라고 했을때 한달에 1750만원의 식비가 들어간다.

식비만 들어가겠는가, 수송비와 기타 유지비도 감안하면 한달에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현대 기준으로 2500만원이상의 지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을 어느정도의 기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짧지 않은 시간동안 유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이세벨은 성정을 봤을때 때를 기약하기위해서 참는 사람이기 보다는 남편과 궁합이 잘 맞기때문에 아합의 재위 1년 전후를 시작으로 자신이 원하는것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

 

오바댜가 아합과 함께 물의 근원을 얻기위한 시찰을 나와서 둘로 나뉘어 있을때 엘리야가 오바댜에게 와서 아합왕에게 "엘리야가 여기 있다"하라. 고한다.

이에 오바댜는 쉽게 말해서 "당신이 약속장소에 없을 경우 나는 죽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이에 엘리야는 아합을 기다리고, 오바댜의 메세지를 들은 아합은 엘리야가 있는 곳에 온다.

이에 엘리야는 이렇게 말한다. "갈멜산으로 너가 옳다고 여기는 바알+아세라 선지자들 850명을 모아와라, 누가 참 신인지 대결하자"라고 한다.

여기서 부터도 정말 놀라웠던점이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내 백성을 풀어달라"고 했을때 모세는 이러해서 안될것같고 저러해서 어렵고 등등을 말한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답변을 해주신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합에게 메세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바로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1: 850은 850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너무나도 쉽게 그냥 무참히 죽여버려도 될 정도의 압살할 수세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러쿵 저러쿵 하지를 않았다.

이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한번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세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전, 삶을 영위하는 은혜는 받았으나 그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공급받는 다는것이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불분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모세는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버렸고 딱히 기적같은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두려워 했을지도 모른다.

 

엘리야의 경우는 3년간 그냥 말도안되는 삶의 방식으로 영위되었다.

남의 집에 빌붙어 있으면서 그것도 기름과 밀이 똑같은 항아리에서 마르지 않으니, 이건 신이 돕지 않고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미 3년간 좀 하나님의 행하심을 실질적으로 눈으로 보면서 살아온 은혜가 누적되었다고 볼 수 있을것같다.

 

 

네번째

 

정말 사람은 시대를 불문하고 너무 똑같다.

이 선지자의 대결을 하기 전에 아합이 미리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갈멜산으로 불렀고, 모두 왔다고 전해진다.

추정인원이 최소 몇 만명에서 몇 십만명은 되었을 것이다.

기근이라는 특이성이 최소 3년이상 지속되면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테니깐.

 

이 백성들을 보며 엘리야는 말한다.

"너희가 어느 때 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고한다.

 

그 말많고 불평불만에 투정의 아이콘이고 뭐가 아무튼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끊임없이 토론과 비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한마디도 안한다? 비난을 하든 수긍을 하든 뭐라도 했어야 정상일텐데 아무말 없었다는것을 보면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여호와가 이길지, 바알이 이길지 확신을 하지 못했으며 이긴쪽을 지켜보고 그쪽에 붙어야겠다는 인식이 팽배한것같다.

 

지금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기독교가 딱히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충분히 좋은 이미지가 아닐짓들을 너무 많이 해왔고, 지금 이순간에도 하고 있다.

가정이 파탄나는 것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니들이 희생하라는 식으로 한다.

그렇게 배 불러가는 목사내외와 말라가는 가정을 보며, 아랫세대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게 현실이고.

 

그러다보니 분위기상 믿는자임을 티내고 살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았을때 행동이나 그런걸로 전혀 알수가 없다.

식전 기도도 안하는 이들이 많다.

 

뭐 지금이야 박해가 없다지만 진짜 나치즘 같은게 있게 되고 그들의 타겟이 신자라고 한다면

과연 그때는 어떻게 할까? 성경에 보면 "목자 잃은 양과 같이 흩어질 것"이라고도 하고 "마지막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하신다. 그리고 나도 행위 지속은 하되 이거를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놓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같다. 20대 초반때는 고문을 받을 지언정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를 저버리지 않겠어. 라고 결심했던 내 자신도, 너무나 많은 신체적 고통을 받다보니 고문의 무서움을 알아버렸다.

고문이 괜찮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안당해본 사람이다.

신체적 고통이 임하기 전엔 그 고통이 어떤건지 모른다. 마치 차와 부딪혔을때의 아픔을 어린아이들이 몰라서 신호위반도 어렵지 않게 하는것 처럼 말이다.

그만큼 사람은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의지할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는

믿음을 스스로 유지할 수도 없는 존재 이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래서 공급받음으로 살아가는것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섯째

 

아무튼 결과적으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은 시간상으론 최소 12시간 이상을 제사를 드렸으나 불이 내리지 않았고 엘리야는 기도 한큐에 그동안 부어놓았던 물도 다 말라버릴 정도로 큰 불이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야의 지시에 따라서 그 선지자들을 모두 잡고 죽인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에게 말한다. "이제 비가 곧 올것이니 늦지않게 가서 먹고 마시라고"

그랬더니 아합도 대단한 단세포 같은 느낌인것이 정말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진짜 가서 먹고 마시려고 하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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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집단적, 개인적 심리에 대한 사람의 여러가지 모습들이 녹아있는 장이여서 정말 뜻 깊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하나님의 불내리심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믿었으니 망정이지

이런걸 보고도 믿음이 동하지 않았던 사례들도 성경엔 종종 있다.

그랬다면 엘리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1:850명이라는 숫자에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밀어 붙였다는 것도 놀랍다.

 

나 개인적으로는 오바댜 처럼 아합과 같은 시기에 100명의 선지자를 구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준비하길 소망한다. 어차피 미래는 내 손에 달린것이 아니고, 지금의 작은것을 할 뿐이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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