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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22.02.22[요한복음17장]추상적인 말씀, 하나됨의 정의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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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은 말씀을 읽는게 너무 힘들었다.

진짜 오래간만에 잡생각이 너~~~무 많이 겹쳐서 정말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집중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세요"

라는 기도를 하며 볼 정도였다.

 

이번 파트는 정말 간결했지만, 독특하고 추상적인 기도를 하셨다.

 

첫번째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음.. 가장 쉽게 연상되는 이해는 어떤사람이 성공을 했을때, 그 성공자의 부모도 굉장히 대단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경향이 있다. 더더욱이 그 성공자의 행태와 여러가지들이 부모로부터 왔다면 더욱 말이다.

 

 

두번째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추상적이다. 정말 주제가 전혀 다른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문맥상 뒤에 다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볼때, 영생을 얻기위한 선행조건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그러면 영생을 얻음과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것.

이다. 라고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좀 의아한게 단순히 "아는 것"으로 영생을 얻게되고 그들을 영화롭게 한다?

이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단순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우리가 "안다"라는 상식선은 매우 광범위하다.

그냥 흘려가다가 여기에 00편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 나 거기에 00편의점이 있는걸 알아"

정도의 안다 인지

 

시험볼때도 이해는 되었어도 풀지못하는 문제, 활용하지 못하는 기술이 너~~무나도 많다.

이것을 진짜 해본사람은 단순히 이해된 차원에서 "안다"라고 말 못한다.

진짜 활용도 할줄 알고, 응용된 문제또한 풀줄 알아야 비로소 "안다"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안다"의 기준이 사실 성경의 언어적으로 봤을때 의미가 맞다고 생각하는데,

원론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가지고 나서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알고있다.

이 정도의 "안다"수준인것같다.

물론 이를 알기 위한 구체적인 기술은 나도 사실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패스하도록 해야겠다.

 

 

세번째

 

정말 기준점이 대단하다. 그리고 난해하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즉,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따르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런것들을 보며 따랐다고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네번째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한다.

 

그 이후로도 여러가지 말이 나오지만, 핵심은 이것이다.

나는 그들안에, 아버지가 내안에 있는것같이.

마치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해보자면 신도가 C벤다이어그램으로 가장 크고, B가 예수님으로 C안에 완전포함으로 있고, A가 하나님으로 B안에 완전포함으로 있는 그런 느낌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되길 원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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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떤 특정 단어들로 정리하기에는 이번 장은 저엉말 난해하다.

그리고 말의 범위가 굉장히 넓고,

하지만 간단한 부분도 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구원임을 믿고, 따른다.

이 부분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중요했고 심오했다고 보이는 부분은 바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즉, 그나마 간단히 정리해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자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신다.

 

이 "하나됨"이라는것 또한 사실 굉장히 난해하고, 정말 이 난해하고 광범위한거를 축약해서 자기식대로 해석하여 등장하는 잘못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이 하나됨은 내가 보기에 어떤 특정 사상으로 똑같은 형태를 띄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뿌리가 같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뭔가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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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하나됨을 내가 이해한대로 말해보자면 이것과 같다.

어떤 부자 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근처는 기근이 들어서 모두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이때 부자 아버지는 밭의 일을 더욱 힘써서 하자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이때 부자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여러명 있다.

어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죽도록 밭일을 하고 거기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다. 반면에 밭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너무나도 증오한다. 왜냐하면 밭일은 중요한거니깐. 왜 중요한지는 관심없고 어쨌든 내 아버지가 중요하게 여기니깐 중요하니깐.

 

하지만 어떤 아들은 밭일을 하지 않고, 의술을 배운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그래서 먼저 있던 아들은 이 아들을 굉장히 미워하고 증오한다. 왜냐하면 밭일을 하지 않으니깐.

 

또 어떤 아들은 집에서 떠난 후에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5년 정도 지나서 부자 아버지가 죽고,

첫번째 아들은 두번째 세번째 아들을 증오하며 말라가는 밭을 더욱 힘써서 좋게 개간하려고 한다.

하지만 누굴 도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밭을 더욱 좋게 만드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두번째 아들은 의술로써 사람을 돕기 시작한다.

하루에 감자 한알씩만 먹고 살아가서 배고프지만 그래도 그들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행복하다.

 

세번째 아들은 다른 마을에서 엄청난 도구와 씨앗등을 가져와서 사람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며 먹고살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여전히 첫째아들은 두번째, 세번째 아들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가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밭일을 도와주지 않아서 과로로 쓰러지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됨에 가까운것은 둘째, 셋째 아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아들은 아버지의 형태는 따라하려고하고, 아버지의 형태는 하나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왜 그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이 첫째아들같은 사람은, 정말 놀랍게도 내가 봐왔던 신자가 100이면 최소한 명확하게 50이상은 이와 같았다.

거의 수만명을 봐왔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하나님으로 비롯되는 은혜를 입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었으면 너무 좋겠고

그것을 위해서 나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것을 하는 중이다. 비록 지극히 작은것 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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