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알았다가도 잊어버리고
다시 알았더라도 잊어버리기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내 머리가 깨어나기 시작한건 20대 초반에 선교사가 되기 앞서서
"하나님을 알고 싶으니 하나님을 알려주세요"
라고 수천번,수만번 이상을 말씀이 이해가 안될때 기도를 했다.
원래의 나는 글씨는 읽고 있으나, 그 글씨의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의미의 연결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잘 와닿지가 않았고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저 기도를 매번 반복한 후에 어느순간부터 머리가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급격히 내가 내 자신이 아닐정도로 똑똑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많이 느껴졌고 정말 많이 연결되었고 정말 많이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모르게 기도를 했었다.
"하나님, 이 앎은 하나님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습니다. 잊지 않게해주세요."
라고 드문드문 했던게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내가 이만큼 똑똑한 사람이니 어떤것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것이든 시도하는데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연애의 시작이든, 일 자리의 면접이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내가 이만큼 똑똑한 사람이니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것이
짙어질 수록 연애에 있어서 시작은 성공하는게 쉬웠으나, 과정에 있어서 나의 욕심이 점점 심해져서,
짙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헤어지는게 많아졌고
일자리를 구하는것에도 문제는 없었으나, 가치없다고 여겨져서, 마음이 급해져서, 실제로 뭔가 갇혀있는 분위기가 되는 등의 이유로
이직을 했다.
아주 짧게 합격 후 발 담궜다가 이직하는 아르바이트 까지 포함해서 40회~100회 정도 한것같구
연애도 20회 이상은 했다.
그러다보니깐 지쳤다. 심지어 이때쯤 되니깐 내가 특별히 깨달았던 말씀에 대해서도 머리론 알겠는데,
와닿지가 않았다. 그렇게 연결고리가 점차 아주 희미하게 끊겨가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은 머리로도 알기가 어려웠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였다.
이 후로도 사고 이후에 마음의 교만함이 무너지게되고 다시 하나님은 나에게 "알게"해주셨다.
그리고도 그 "알게"해주신 것이 나의 깨달음과도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알았지만 모르는 것이 늘어갔다.
이때 오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정체성에 관한 말씀이였다.
세례요한에게 바리새인들이 묻는 질문이였다.
당신은 그리스도이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면 선지자 중에 하나냐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
그러면 무슨 권리로 세례를 주느냐
선지서에 보면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있어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있다.
그게 나다.
라고 했다.
단순히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하고 있어서 순서가 다를 수 있겠지만 거의 맞을 것이다.
심지어 세례요한은 따르는 이들도 많았고, 제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나라는 흥하여야 할 것이고, 나는 쇠약해져야한다."
라고.
충분히 인기가 있었고, 세례를 마치 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런 사람에게 정체성이 바로 서있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정체성은 재밌게도 내 스스로가 정립하는 것이 아니고 알 수도 없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알게되는 부분이라고 하용조 목사님이 말씀하셨고
분명 성경 어디선가 봤던 기억도 있다.
나를 다시금 돌아봤다.
나에게 모습은 달랐지만 나에게 정체성을 요구하는 질문과 요구는 많았다.
함께 담배피자 등등
나는 담배를 피는 것이든, 술을 먹는 것이든 받아들이기를 즐겼다.
나의 정체성은 우선순위가 아니였다.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구원받은 자. 이게 나의 정체성인데 말이다.
사실 가장 큰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연애관계였다.
내가 A라는 사람의 남자친구라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B라는 사람의 유혹이 있다든지,
하면 너무도 쉽게 흔들려버린적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심해질 수록 나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될때 세상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음을 나는 알고있고, 경험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의존해갈 수록 세상은 커져만 갔고, 점점 두려워졌고 사소한 것에도 두려웠다.
실패는 쌓여가고 늘어갔고 점점 굳어져갔다.
말씀을 듣는 중에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순교의 피를 흘리며 말그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아니, 진짜 복음을 전하려다가 죽는 사람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돈이 모자란 선교사님들을 많이 봤다. 실제로 봐왔던 모습도
몸집을 키우려고하는 목사님이 있는가 하면, 그 몸집이 충분하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말씀다운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들의 교회를 보면
재정의 대부분을 선교자금으로 쓰고 계셨다.
동시에 나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돈줄이라고 한다면
나를 위한 집을 제외하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쓸수있도록 하여주시며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위하여 쓰는게 1/10으로도 충족이 되고
9/10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게 해달라고 하길 바라게 되었다.
교회의 몸집을 키우는데 집중할 때가 있다고도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만 하는게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필요한 곳을 알게하셨다면 그곳을 위해서 나를 쓰고싶다.
그나마 감사한건 현재로썬 6명을 적은돈이나마 후원하게 할 수 있는 마음과 환경을 허락하여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정체성.. 사실 이게 전부인것같다.
잊지않고 싶다.
잊지 않아야 삶다운 삶을 살수있는것같다.
뭐랄까.. 내가 주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면 스스로를 노예화되는 뭔가 그렇게 되는것같고
스스로 통념상의 섬김이 아닌,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신체의 장기의 위치의 역할로써의 섬김에 자리에 있는 이미지로
있다보면 역설적으로 자유로운것같다.
세상은 나 자신을 의지하라고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다.
다른 것보다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할 존재가 못되어서,
나는 몰라서
등등 생각나는것도 있지만
다른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고, 그의 안에 있기를 희망하는 희망자.
나에게 부여된 자리에 있기를 희망하는자."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REjOeHZ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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