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2장
이 부분을 읽으며 다윗은 하나님께 "여태까지 건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피난처가 되심에 감사합니다." 등의 찬양을 했다.
그 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나쁜일이 생길때 마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벌어지는거야"
"아 진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할거면 차라리 그냥 죽여요 왜 이렇게 장난치는 것 같이 저를 괴롭히는게 재밌어요?"
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럼에도 무언가 상처가 치유되 듯이 회복되는 장소에 있도록 하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는 생각들을 번갈아가면서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연애가 좌초되어서 슬퍼하고 낙담하고 힘들었는데, 어쩌면 더 나아간 미래에 내가 나의 자리에 있을 수 없을때 불행하단 걸 아셔서 막으신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대부분의 헤어짐은 내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그리고 헤어짐의 끝의 생각은 항상 그러했다. "지금의 너 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려고 한다."
라는 오만하고 더 좋은 사람을 원하는 그런 생각을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애는 나에게 무한헌신 적인 사람들이였고, 나는 그런사람들이 필요로 했다.
하지만 "좀 더 예쁜 여자","좀 더 섹시한 여자","좀 더 똑똑한 여자","좀 더 가슴이 큰 여자"
등등 모든 것을 채울 수 도 없는 원함으로 새로움을 찾아 보냈던 지난날을 다시 돌아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지금의 아내를 주셔서 많이 배우고 깨닫게 하는 부분이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일을 하는 것도 계속해서 좌초 되지만, 최소한에 대부분의 "시작의 선택"은 "여기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었고, 그 가치 있는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거나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이, 반복되는것에 돈을 받는 것, 혹은 무의미한 행동만 남은 상황이라면 언제나 "마지막의 선택"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겠다."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발자는 끊임없이 배움이 가능하며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니깐 나에겐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의 기본 수준을 탑재하기 까지의 과정이 또 어떨지는 궁금하지만.
누가복음 22장
핵심적으로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시는 장소와 시간이 있으셨고 이는 세월이 흐르며 나도 생겨왔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이미 앞을 다 알고 있었고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어하시는 모습이 한편으로 있는가 하면 받아들이려고도 하셨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무언가를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다.
나에게 주신 역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에 나에게 주신 달란트인 "끊임없는 지식욕","호기심","근본을 파고 들려는 마음"
을 활용하여 나에게 주신 것을 해내고 싶다.
어떤 성경 부분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서도 충성되지 못한 자가 하물며 다른 것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이 비유로써 나온다.
지극히 작은것에 충실하고 싶다.
때로는 내 미래를 알면서 받아들여야할지, 피해야할지를 갈등할 때가 있지만
때로는 내 미래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두려움 속에서 언제나 몇가지 갈래가 있다.
이럴때면 항상 감사하게도 드는 생각이 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나니"
결과론 적인 접근의 답은 모른다. 하지만 과정적으로 이 정도 알게해주시고 하루하루 쌓아갈 수 있고
지금은 중독인 만화, 음란물, 게임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도록 하여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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