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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22.03.04 [열왕기하2장] 엘리야의 하늘로 올라감.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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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독특한 점이 있다.

더더욱이 한국에서 무조건적인 "순종의 미덕"과 "예수님처럼"이라는 명목으로 남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착함과도 같은 이미지를 강요 강요받아온 사람이라면 중요한 말씀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엘리야의 승천전, 생각해볼만한 여러가지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갈 -> 벧엘 -> 여리고 -> 요단에 이르기까지

각 부분마다 엘리야가"청하건데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고 한다.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의 반복이다.

 

엘리야가 엘리사보고 머무르라고 했던 건 이해가 간다.

위에 말했던 4곳에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모두 엘리야를 하나님이 직접 데려가신다는 빅 이벤트가 있음을 알게해주셨기 때문에 마지막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으나, 좀 더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다.등의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엘리사는 왜 그렇게 집요하게 엘리야의 곁에 머무르려고 했을까?

어차피 하나님이 데려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는데 말이다.

 

정말 놀라운 신적인 권능이 엘리야와 함께하는걸 들어왔고 봐왔던 엘리사가 마지막엔 어떻게 데려가실까? 라는 호기심으로 함께있고자 했을까?

물론 그것도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더 강한 동기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이에대해서 사람들은 단순히 "엘리사는 애초에 엘리야를 따라다닌 이유가 엘리야의 능력을 얻어내기 위해서 따라다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물론 본능적으로는, 아주 깊숙한 생각으로는 언제나 원해왔을 수도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때, 단순히 따라다닌다는 것 만으로 그런 신적인 권능을 내가 얻어낼 수 있다?

그것이 성경사에서 가능했다면 너도나도 엄청난 권능이 있었던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들의 최후까지,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다니듯이 했던 사람은 내가 아는 선에선 없다.

 

즉, 전제 자체가 "내가 따라다닌다고 해도 그 능력이 내것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보통의 따라다니는 이유는 너무 상식적이게도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여러가지들을 봐오고 그것들이 좋은 것이라면 모방하기 위해서 따라다녔겠지,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듯 하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성경에는 정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순종을 안하는 경우가 많다.

뭘 하라고 할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안하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지만 이것에 대해서도 단순 반발심이 아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했을때, 누군가를 위한다. 너의 희생을 나도 같이 희생하길 원한다. 등등의 이유로 순종하지 않는다. 즉, 전체적인 맥락에서 "더 나은 방식"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야의 승천과 그 이후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요단 근처의 물을 갈리게 하고, 지도상으로 봤을때 단순히 요단강만 후보군은 아니고

요단강(요르단 강), 얍복 강, 사해, 야르무크 강 크게는 4개의 후보가 있다.

이 중 어느 방향으로 가다가 불병거에 실려서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단 근처에 있던 선지자들이 엘리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의 시신이라든지 흔적을 찾겠다고 50명이 3일가 찾았다고 한다.

정말 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사람들이 얼마나 잘 찾는지는 성경 군데군데, 성경 뿐 아니라 세계 역사 속에서도 알 수 있다. 정말 찾기의 귀재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못찾았다면 보통은 못찾는 것이지. 뭐 하늘로 올라가는걸 엘리사가 봤다고 하니.

 

엘리사도 엘리야가 "너가 원하는것이 무엇이냐."라고 할때 "당신의 영의 능력의 2배를 나에게 주소서"라고 대답하게 되고 이에 대해서 "내가 하늘로 올리우는것을 보게되면 그렇게 되리라"라고 하였는데, 엘리사는 그 장면을 보기위해서 엘리야와 함께 걸으면서도 긴장을 하고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여리고에 머물렀다고 하는걸로 봐서는 이동동선상 엘리야와 엘리사가 건넜던 요단 근처의 물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후보는 요단강 이였던 것같다. 그것도 느보산 근처의 요단강 즈음

게다가 여리고 근처의 성읍이라는것으로 보아서 아이인지 여리고인지 혹은 제3의 지역일지는 모르겠으나,

"지역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쁜지역"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 되어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엘리사가 물의 근원에 소금을 뿌림으로 고쳐지고 물이 나아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엘리사가 여리고 근처의 성읍으로부터 좀 더 서북쪽에 위치한 벧엘에 가는 중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서 조롱하며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라고 한다.

이 올라가라는 의미는 여리고 근방 성읍보다 상대적으로 벧엘이 위에 있어서 이렇게 말한 것일수도 있으나,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의 행선지를 알리는 만무하고, "올라가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봐서는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는 것을 그런일은 있을 수도 없다면서 조롱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이 된다.

즉, 자신이 봐왔던 하나님의 역사와 정말 역사에서 하나님께 올라간 2번째이자, 누군가 올라가는 장면이 목격된 최초의 사람에 대해서 완전히 부정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혹자는 "대머리"라고 놀려서 화났다고하는데 문맥상 대머리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다. 솔직히 크게 외모에 한국만큼 신경쓰는 시대도 아니고 지역도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한보 양보해서 대머리라고 욕했다고 화낼수 있지, 근데 그렇다고 아이들 수십명이 죽을게 뻔히 알겠는데 그정도로 화가날까?

자신의 스승과 그런 스승을 올려보낸 하나님의 모습을 목격한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보는 등의 모독하는 것에대해서 화가 났을 것 같다.

 

아무튼 그들을 엘리사는 저주하게 되고, 그러자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42명을 찢었다고 되어있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진화론상, 그런 생물들(공룡, 거대한 사자, 거대한 수장룡등)이 절대로 사람과 동시대에 살 수 없다.

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볼때마다 생각나서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면 기린, 코끼리, 사자같은건 뭐 같이 살기에 안전해서 같이 살아있나? 상어나 큰 고래가 배를 쳐도 감당못하고 실제로 크라켄도 상상의 동물이였다곤 하지만 거대 오징어도 드물지만 발견되고 사진찍히는 세상인데

 

아무튼 매 장마다 흘려지나간다면 흘려지나갈 부분들이 많지만, 생각을 주변까지 포함해서 디테일 있이 생각해보자면 정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알게되는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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