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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2022.02.12 요한복음 14장 모든것에 함께하시는 예수님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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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다소 난해할 수도 있는 추상적인 말씀을 하신다.

 

요약하자면

"내가 떠날건데, 나는 너와 함께할 것이고, 만약 너가 나에게 속한 자라면 내가 말한대로 행할것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은 이번장 시작부터 "걱정하지마, 근심하지마, 너가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어"

"나 이제 떠날건데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아. 내가 먼저 예비하러 갈게"

"그 곳으로 가는 길은 나야. 나를 통해서 아버지께로 갈 수 있어"

 

그 와중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걱정에 걱정을 한다.

이에 대해서도 a는 무엇입니까? a는 그것이야. 걱정하지마.

라는 패턴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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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심화 파트로 가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거야.

내가 아버지에게 구하여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시길 바랄 것이고, 그가 너희 속에서

거하실 것이다. 내가 고아와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고, 가르칠 것이다.

그렇게 너희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다.

 

라고 한다.

 

즉 패턴자체가 예수님의 안정을 취함 - 제자들의 불안의 반복이다.

왜 그랬을까?

 

정말 때가 다가 왔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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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다보면서 느낀건데, 하나님은 말씀해주고 계셨다.

다만 내가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듣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만 그게 또 언제나이기도 하지만 언제나는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하나님안에 거하려고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짙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일이 엎어지고 나서 "이렇게 하면되"가 아니라

어떤일이 엎어지기 전에 "이렇게 하면되, 저렇게 하면되"라는것을 알려주셨던것같다.

이 말씀처럼.

그러나 나는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행하다가 무슨일이 닥쳐서 엎드려있을때도 언제나 변함없이

다가오셔서 다음의 방법을 알려주셨던 것 같다.

 

사실 13장, 아니 그 이전에도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14장 부터는 느낌이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였다.

예수님이 이제 본격적으로 정말 죽음을 향하기 이전에 제자들을 준비시키시는 느낌이였다.

단순한 위로 뿐 아니라 사실상의 모든 방침을 주셨다.

왜 모든 방침이라고 생각하느냐면,

길에대해서도 말씀해주셨고

행해야 할 것에대해서도 말씀해주셨고

그것을 하기위하여 모든것을 알게해주시고 도우시는 보혜사를 주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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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것은 어떤것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때도 어떤것을 위한 예비과정이 있었고, 지금도 다음 스테이지에서 활동하기 위한 무언가의 예비과정이라는 느낌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해야할지 점점 알려주신다.

다만 내 범죄함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그 말씀은 혼동되기도 하고 오히려 잘 못 알아듣기도하지만.

확실하게 하나님의 안에 거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봐왔던 위인전을 보더라도, 수천명 이상의 위인전을 봐왔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통해서 작은것은 그보다 약간 큰것을 위해서 준비되는 과정들이였고 그 약간 큰것은 좀 넓은 것을 위한 준비과정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자와 비신자의 인생을 통틀어서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그런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모르겠다. 위인전도 많이 봐왔고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는 없다.

 

감사의 대상이 다를 뿐, 감사하고 어려운 환경이든 아니든 잘 살아가는 사람 많고

어떤 환경에도 불평 불만에 원망까지 하는 사람은 양쪽 모두 있다.

신자와 비 신자의 정의를 추상적으로 하자면

신자는 구원을 받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 라고 할 수 있겠고

비 신자는 자신의 삶을, 가족을,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해서 살아가는자. 라고도 할 수 있을것같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명확한 차이점을 개괄적으로도, 세부적으로도 못느끼겠다.

무엇이 다른걸까?

 

일단 삶의 이유는 확실히 명확히 다르다.

바로 앞선 이유처럼 신자는 하나님과 관계로써 삶을 완성시켜가려고 하고

비신자는 자신과의 관계로써 삶을 완성시켜가려고 한다는점?

이렇게 확실히 다른것같다.

하지만 그 외의것은 무엇하나 다른게 없는것같다 사실

사람의 케이스 따라 다른것이지.

 

정말 궁금해지는 부분이라 평생을 두고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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