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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2022.02.10 요한복음 13장. 답습과 사랑에 대한 고찰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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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도 여전히 충격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첫번째 아들에게 "모든것"을 맡기신 아버지

3절을 보면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모든것을 자신의 손에 맡기셨다고 한다.

이건 지금 보건데, 단순히 십자가에 달림으로 인해서 죄사함만을 위한 모든것이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번째 부분에서 나온다.

 

 

두번째 보여준것처럼 행하라.는 샘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기신 이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15~16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정말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예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내가 아버지가 해왔던 것들을 보고 해온다."라고

예수님은 단순히 죄만 대속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게 아니고 이 분이 하셨던 모든것에 대해서 보여주시고

그를 주 또는 선생이라 부르며 따르는 이들에게 자신이 행하셨던 것을 딱 행했던 만큼 이하로 행하게 하길 바라셨던 것이다. 그래서 샘플을 보이신 것이고

 

예수님이 성경속에서 보이신 것은 무수히 많지만 축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포도주가 떨어져서 곤란한 행복해야할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제공. 그러므로 불행했어야 할 그들의 혼인잔치의 행복을 이어나가게 하셨다.

이때는 신혼잔치의 상징성이 대단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대접을 제대로 못하면 두고두고 찜찜함이 있었을 것이고, 주변사람들의 평 또한 두고두고 찜찜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거는 서양사회보다 오히려 동양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이해가 잘 될 수 있을것이다.

 

2. 자신 스스로가 아니라 세례를 받는사람에게 세례를 받은 후에 세례를 주시기 시작하였음

그리고 자신 뿐아니라 나중엔 제자들을 통해서 세례를 주시기 시작하셨음

 

3. 병자들을 안식일에 관계없이 고쳐 주셨음. 공교롭게도 대부분 그게 안식일이였지만 진정한 안식일은 타인에게 안식을 얻게하고 나를 희생하는것도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신것 아닐까?

 

4. 말씀을 선포하셨음. 그리고 많은 무리들 심지어 수천명이 따랐다고 하니 최대 추산치로는 강의당 몇만명이 움직였을 수도 있다. 일종의 수퍼스타의 콘서트장에 모인사람이 내가 알기론 몇만에서 딱 10만전후정도로 알고있는데 그 인원의 절반 전후의 큰 인파라고 본다.

 

5. 모든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하셨다.

이해가 안되는건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물론 비유로 바로 알아듣는이가 적었으나, 시간이 지난후에는 모두다 깨달음을 얻었다.

 

뭐 이외에도 정말 많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모든일이 한 키워드로 말하자면 "사람의 생명"이다.

진정한 생명이다. 어떤 것에도 이면에는 사람의 생명이 녹아들어있다. 형태가 다양할 뿐이지.

그리고 종이 주인이 하는일을 넘어서 할 수는 없다고 하신것은 다시 생각해보자면 주인이 행했던일이 최대치이고

그 이하의 한가지, 한가지라도 귀하게 보신다고 생각한다. 진정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세번째, 말씀의 응하심

 

예수님은 꽤 자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라"라는 것에 대한 말과 행동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그 주석구를 따라가보면 당시 상황에서 그 글을 썼던 화자가 자신의 심경과 상황을 그대로 고백한 것이다.

그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놀랍게도 예수님시대 몇천년 전의 과거에 살았던 사람의 말씀화가 된 것이, 예수님 시대에도 응해진다는 즉, 다른 시대에 상황에 적용되는 말씀이라는 점이 참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 다 옛날 얘기다. 이미 있었던 얘기고

근데 그 말씀들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정말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세상이 끝나기 전에 말씀의 일점 일획도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네번째, 사랑

 

34~35절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라고 하셨다.

 

이 사랑이라는게 당췌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누군가는 나를 팔것이다."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자가 그 이다."

라고 하시고 유다에게 주셨고

"이제 너의 할 일을 하라"라고 예수님이 하시자.

제자들은 전혀 의심도 안했다. 

"그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든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주라 한 것으로 생각하더라"

라고 한다.

정말 드라마 같고 영화 꽁트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을까?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을 주 또는 선생이라 부르며 따르는 이들끼리 사랑을 하라는 말인가

사랑이란 범위는 무엇일까

 

예수님도 과거에 바리새인, 유대인들 중 일부를 매우 빡치셔서 저주하고 화냈던 적도 있다.

그런걸 보면 또 완전 모두에게 사랑한다? 아니면 그렇게 하신것도 사랑의 일부였을까?

음.... 예수님이 바리새인등에게 했던 걸 보면 확실하게 그들이 돌이켰으면 하는 마음은 0이였던 것같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올 진노를 피하려고하지 마라"라고 하셨으니깐

이게 세례요한의 말이였는지 예수님의 말이였는지는 기억이 너무 오래되서 불분명 하지만

아무튼 "응 너는 갱생이 안될정도로 악해, 그냥 그대로 살아가"라는 느낌이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원해주셨지만 뭔가 악을 붙들고 있는 이들은 구원을 해주실 마음이 없었던 것같다.

이 악의 기준이란 설명이 모호하긴 한데 확실히 도덕적 악은 아니다.

누굴 죽였고 이것은 현상적인것이고, 마음속에 품고있는 그 씨앗이라고나할까

그 씨앗의 생김새에 따라서 악과 그렇지 않음이 판단되는것같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악이 아니면 선이다. 이것도 아니고

악이 아니면 악이 아닐뿐이지 선은 또 아닌경우도 많다.

과자가 빨간색이 아니라고 무조건 까만색일리는 없지 않은가. 똑같은 원리다.

다만, 빨간색은 안된다는거. 뭐 이런느낌으로 보면 될것같다.

 

정리하자면 확실한것은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예수님은 제자되고 종되고 자식된 우리에게 보여주신만큼, 그 안에서 행하길 희망하시며

서로 사랑하길 원하신다.

사랑은... 정말 잘 모르겠다. 아직은.

그리고 처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것"을 맡기셨다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고통이 두려워서 도망쳤다면 사실상 하나님은 망하는 거였다. 망한다는 표현이 맞을까? 싶긴한데 이게 정확하긴 한것같다.

물론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주고, 아들에 선택권에 따라서 망했다면 어쨌든 노숙자로 살든 뭘하든 다시 일어설 수는 있으니깐? 그렇지만 분명 또 다시 먼 기간이 걸렸을것같긴하다.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시기 위해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모든걸 걸고서도 사랑받을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고 보인다.

정말 이걸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데, 이 "사랑받을 자들"의 범위는 누구도 모른다고 본다.

성경 어디에도 명확히 표현되어있는곳은 없기 때문이다.

 

역사속에서 때로는 매우 악인도 개심하였고, 음... 바울을 예로 들려고했는데

바울을 또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있었다.

표현이 잘못되었을 뿐이지 안에 담긴 씨앗은 확실히 하나님을 바라던게 있었다.

음... 마음 깊숙히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이 한톨만큼이라도 있는 모든자에게 구원을 주시는것이 아닐까?

확실히 "모든자"는 단언하건데 아니다.

 

보통 교회에서 가르치기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었다고 하시지만 음... 솔직히 난 그렇게 생각안한다.

너무 동화책적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성경에는 염소와 양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알곡과 쭉쩡이를 함께 거두되 쭉쩡이를 내치지는 말아라. 알곡까지 상하게 될까봐 염려된다

쭉쩡이는 마지막에 한번에 털어버리자. 라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택함받은 자들이 맞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 택함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다.

 

전도라는것은 그 택함의 기준이 모르기 때문에 종들의 역할을 하는것을 수행하다보면 되어지게 되고

나아가서는 구원받을 자는 구원받게되고 아닌자는 아니게 되는 것 아닐까?

구원받을자와 아닌자를 구분하고 선택하는것은 나의 몫이 아니니깐.

음.. 난해하지만 놀라운 부분이 참 많이 생각나게 하는 성경 말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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