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으로 인해서 마리아의 집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이때 마리아가 당시 1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값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는다.
이 행위가 죽을 사람, 죽은 사람을 위한 행위였다고 추론된다.
이 행위를 보고 가룟 유다는 매우 화내며 왜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안쓰고 이렇게 쓰느냐. 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를 예비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하시며 받아들이셨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리아는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으로 들어서 곧 죽으실 것이라는걸 명확히 안지 시간이 꽤 지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1년치 급여를 향유로 준비해서 그 행위를 해야겠다고 판단할 시간도, 돈도 충분히 필요했을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룟유다를 바라보는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이를 보며 "그는 도둑질하는 자다. 헌물함을 맡은 후에 그 헌물함에 있는 것을 가로채가는 도둑질을 하는 자다"라고 한다.
이미 요한은 유다에 대해서 그렇게 봐왔지만 성격이 싸우고 짓뭉개서 정의를 실현하는 타입은 아니였던 것 같다.
다음 장면이 정말 재미있는데, 많은 이들이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며 믿었지만 티내기는 싫어 했다고 한다.
이는 세상의 영화가 내세의 하나님 나라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사건으로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과 함께 나사로도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이 믿는 정의가 방해받는것을 제거 하기 위해서 죽었다 살아난사람을 다시 죽이려하기도하고 그 정도로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믿음이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죽음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에 반 한다고 마땅하게 여긴다면
반대로 본인들이 하는 짓이 정의에 반 할때, 그들은 과연 목숨을 쉽게 내줄수 있을까?
전형적인 그냥 자신의 밥그릇이 중요한 사람이다 100명중 99명은 절대 목숨을 내놓기 싫을 것이다.
역사속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은 독일의 나치즘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 했으나
자신들의 정의가 전체의 정의가 아닌 악이라는것을 깨달았을땐 자신들의 논리로는 목숨을 내놓아야지
모두 도망가고 숨기 바빴다.
뭐, 지금의 정치판도 사실 이것과 별다를 것 없는것 같지만..
너무 안타깝다.. 전 세계적으로 망가져가고 있는 이 모습들이
단면적으로 봤을땐 보이지 않지만 거시적으로 봤을땐 너무 뻔히 보인다 흐름이 어떻게 모두를 망가뜨릴지가
그래도 가급적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돌이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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