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삼십세에 왕위에 올라서
40년동안을 통치하였으니 약 70세 쯤에 죽음을 맞이했다.
죽기전에 솔로몬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였다.
첫번째.
너는 강해져라.
두번째.
여호와의 명령을 모세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모두 지켜라.
그러면 너가 "어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함을 얻을 것이다.
세번째.
두번째와 같이 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겨라.
이렇게 너의 자손까지 하면 이스라엘에서 너의 자손에게 왕위가 끊이지 아니 하리라.
이렇게 3가지가 비록 3~4절에 지나진 않지만 인생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간음이 가장 약한 부분이다.
온라인이든 어디든 음욕을 품은 것 만으로도 이미 간음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사실 나도 내 자신이 알고있다. 그것이 간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한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하나님께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가 없다.
범죄함은 범죄를 불러서 점점 죄악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고, 빛은 어둠을 싫어하는 법이다.
그럴 때 마다 다시금 회개하고 난 돌이킨다.
그게 얼마나 걸리든 어느시간이 걸리든, 다시 반복한다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이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것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는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악해지진 않길 원한다.
그렇게 악해지고 나면 어차피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내 안에는 어둠이 있고, 빛이 있다.
그리고 무엇에 의존을 하는가. 그것에 대한 시험이 일상속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은 다가온다.
그렇게 작은 삶에서 요구하시는 믿음을 지켜갈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길때 까지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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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다윗이 왕위에 있던 시절에 몇가지 사건이 있었다.
1. 아브넬, 예델, 아마사 을 죽인 요압.
-> 요압에게 관련된 사람을 부득이한 관계상 아브넬등이 죽이게 되었고 이것은 포지션상 정당한 전쟁중 사망한 것이였다.
하지만 요압은 여전히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가 압살롬 사건 때 즈음 아브넬등을 죽인다.
때문에 편히 죽지 말게 하라고 한다.
2. 다윗을 욕했던 시므이
->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압살롬 사건때에 다윗이 피난갈때에 다윗을 저주했으나, 차후에 뉘우치고 다시 용서를 구한 사람이다. 그러나, 편히 죽지 말게 하라고 한다.
3.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자녀들
-> 마찬가지로 압살롬 때에 다윗을 대접했던 사람이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했던 것 처럼
왕의 만찬을 함께 즐기는 자리에서 함께하라고 한다.
전자의 2가지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편하게 죽게하지 말라는 것이였고
후자의 1가지는 그가 베푼 선으로 인하여 선대하라는 것이였다.
솔로몬은 이를 지킨다.
이와는 별개로 사무엘의 바로 전 제사장이였던 엘리 제사장 계열의 마지막 제사장이 아도니야를 따랐다는 이유등으로
폐위 시키고
사독이라는 제사장으로 대체한다.
이때부터 사독계열 제사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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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으로는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찾아간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밧세바에게 "너의 아들인 솔로몬의 자리는 너도 알다시피 원래 내자리였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으로 인하여 내 동생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으니, 다윗의 시종들던 수넴여인을 내게 달라"
고 밧세바에게 요청하고 밧세바도 들어줄 마음이였던 것같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의중은 알고있었지만 정치적 관계등을 고려해서 그냥 주기를 바랬던 것같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러나 솔로몬은 아니였다.
애초에 아버지 다윗의 여자를 달라는 것은 왕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여질 요소가 매우 짙었다.
그리고 도전일 뿐 아니라 아버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태도와도 같았다.
마치 압살롬의 다윗의 후궁 대부분 혹은 모두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했던 사건처럼 말이다.
가뜩이나 이전에도 자신이 왕이 된다고 잔치를 베풀었던 사람인데,
내가 볼때 아도니야는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쪽으로 대범했던 사람인것같다.
뭐, 결과적으로 아도니야는 그날 죽임을 당한다.
솔로몬은 결코 녹록한 사람이 아니였다.
정치적관계? 그것보다 돌아가는 흐름에서 방해요소가 되는 포인트들을 잘 제거해왔다.
망설임도 없었다.
2장의 마지막엔 "이에 나라가 솔로몬으로 인하여 견고하여 지더라"
로 마무리 된다.
솔직히 정치적관계? 그게 왜 필요할까? 라는생각이 든다.
어디든 흐름을 막는 역할인 사람이든 사물이든 뭐든 있다.
그것을 제거해줘야 원할히 활동이 가능하다.
바꿀것은 바꾸고, 제거할 것은 제거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구분하는것은 사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이다.
관성이라는 것에 젖어있어서.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나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등에 대해서도 너무 필요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해왔으니깐"
"익숙해져왔으니깐"
이라는 이유로 썩어질 것을 붙들고 있으면 그것 자체가 범죄함이나 다름없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을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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