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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2022.01.19 요한복음 1장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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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복음1장을 읽었다.

성경의 핵심에 대한 여러가지 부분을 다시 읽게되었다.

 

보통, 성경은 한장당 한 두개정도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반해서

이 성경의 부분은 여타 다른 성경의 장과는 다르게 뭔가 이야기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한 4~5가지 정도의 이야기로 이루어 졌던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세상의 처음에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고

세상은 이 말씀으로 부터 지어졌고

이 세상의 모든것이 말씀으로 지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창조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주체가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말"과는 뭔가 다른 주체적인 생명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 말씀 안에는 빛이 있었다고 한다.

그 빛은 각 사람들에게 비추었는데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자신이 만든 땅에 왔지만 자신의 백성이 영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받았다.

 

자녀됨은 사람의 마음의 결정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 빛을 영접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다른 신약 파트에서도 말하고 있다.

그 저술자에 의하면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도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이유도 내포 되어있다고 말한다.

 

 

두번째

 

이 빛을 증언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요한이다.

성경에는 동명이인이 많으므로 통칭 "세례요한"이라고 부른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이 세례요한에게

"세례요한의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한다.

너는 누구냐? 너가 구원을 줄 빛이냐? 누군데 세례를 하느냐?

뭐 쉽게 말하면 이렇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나는 빛이 아니다."

"선지자도 아니다."

"구약에 말씀된,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있어서 길을 예비하는 자"다.

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볼 때에 라고 표현되어있지만

정확히는 세례 도중에 알게된 것같다.

예수님이 빛이며,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곧 죽을 예정인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 수 있는게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세례를 하라고 시키신 이가, 언젠가 세례를 할때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인줄 알라"

고 말했다고 한다.

 

세례요한은 이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온것을 봤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점은

세례요한은 어떤 일체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고 세례만 했다.

그저, 하나님이 지시하셨다는 이유로.

 

다른 성경에 보면 그의 주식은 메뚜기와 석청(쉽게 질 좋은 꿀)

이였다고 한다.

그 쪽 지역도 겨울에는 꽤나 추울텐데 날때부터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시점에서는 예수님이든 세례요한이든 모두 30대였으니

현재의 이미지로 연상되는 30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이런 단호함은.

 

 

세번째

 

이후에 세례요한의 제자 2명이 예수님의 첫 제자로 따르게 되고

이 2명 중 한명은 베드로의 형제로써 베드로를 데려와서 메시아라고 소개시키고

베드로도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나다니엘 까지 총 5명의 제자를 결성하게 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와 율법에 기록된 선지자가 바로 그 이다."

라고 예수님을 소개했고, 나다나엘은 믿지 않았다.

이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것이 없다."

고 하셨고

나다나엘이 "어찌 나를 아십니까?"

라고 하니,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때에 보았다"고 하셨다.

이를 나다나엘이 믿고 따르니 놀랍게 여기셨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것은.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은 간사한 것이 속에 없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

그리고 무화과 나무아래에 있을때 보았다고 하는게 나다나엘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싶다.

왜냐하면 지금으로 생각해봤을때

"니가 컴퓨터하고 있을 때 내가 보았다"

라고 하면 나는 "응? 컴퓨터하고 있을 때 언제?"

라고 생각할 만큼 뭔가 특정되는 시간이 없다.

 

나중에 이 요한복음의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로드맵으로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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