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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일지/임시카테고리

야고보서 1장 행함이 있어야 하는 믿음

by 다니엘의 개발 이야기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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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나는 얼마나 오랜시간동안 바라고 또 바래왔는지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성공은 음란으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회개를 하는것이며,

회개는 완전히 길 자체를 180도 바꾸는 것. 즉,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는것이 원론적인 의미이다.

 

두번째 큰 성공으로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일을 충실히 해내는 종의 삶을 살고

잘했다 칭찬함을 듣는 것이다.

사실 이 두가지가 내게 있어서는 가장 큰 성공이고, 성공의 전부이다.

 

그 이유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정도 때 부터 친구로부터 음란물을 알게된 이후로는

음란물 중독자가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나를 보니, 나는 이미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의 음란물 중독자가 되어있었다.

단순히 음란물을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포인트가 있는 어느 여자라든지 바라볼 때면,

그런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렇다.

 

진심으로 죄를 지을 때 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벌을 받았다면, 성경의 기준하는 하나님앞의 죄로 볼때,

나는 수백만번, 수천만번도 더 벌을 받았어야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징계를 내리실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징계를 내리시든 아니시든 언제나 내 마음에 방향을 주셨다.

다만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몰랐던 때도 있었고, 알았지만 무시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는데 행하지 못하는게 가장 컸다.

너무 무력할 정도로 죄악에 찌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기도했다.

'부디 이 죄악에서 나를 건져주세요. 하나님 앞에서 이런 범죄함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돌이키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하나님이 두번다시 저의 범죄함을 기억하시지 않고 용서하실지언정 내가 더 이상 범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내가 범죄하는 중에도 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외면합니까'

'은혜를 많이 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저를 저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릴때면 징계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해주세요'

 

이것이 나의 보통의 기도 패턴이였다.

정말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적인 부분들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대부분 기억하지 않기에,

기록으로 남기는것이 굉장히 유의미 하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범죄함과, 기도함에 엎치락 뒤치락 거리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음란함이 가장 싫은 이유는 첫번째로 하나님앞에 범죄하게되고, 내 영혼이 더럽혀져서 하나님과 적이 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하나님을 위해서만이 아니더라도 내 정신상태가 썩어 문들어져 간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느낀다.

그에 따라서 공부든 뭐든, 생산적 활동에 있어서는 모든 부분에 제동이 걸린다. 때문에 집중력이 개 쓰래기가 된다.

그러자면 하나님이 나를 벌하지 않으시더라도 나 스스로 망한다는 사실을 일년전쯤부터 본능적으로 계속해서 알고있다.

그래서 더욱 더 끊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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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도함이 앞서 말했다시피 1년 반정도? 된것같다.

결혼하고, 입원하고 다치고 나서 그 범죄함이 범죄함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조금씩 더 알아갔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리고 중간에 완전 몇달간 끊게해주신 은혜와 인내함으로 참아낸 적이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나태함이라는 해이해짐 속에서 한 번더 기회는 생기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하고, 내가 잘 되는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샌가 '왜 그래야하지?' 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무너진다.

그것을 크고 작게 경험했다.

 

다행히 하나님은 성경에 내가 아직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모든 상황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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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야고보서가 정말 지금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 첫번째 파트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야고보서 1장 2~4

 

정말 나는 음란함이라는 최악의 시험을 만났다.

단언하건데,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범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끊어내고자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인내를 하게 되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인내를 내 스스로의 나태함으로 스스로 버렸다.

정말 충격적이다.

그러나 다시금 인내함으로 이 범죄함을 이겨나가고자 한다.

이 시험은 나로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깐.

 

# 두번째 파트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야고보서 1장 5~8

 

나는 진실로 음란함으로부터 멀어질 지혜가 필요했다. 하나님께 구원함도 입었고, 용서함도 받았다.

그러나 이 죄악으로부터 멀어질 지혜가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이 음란함으로부터 멀어질 지혜, 아예 돌이킴의 회개를 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일에 대해서 충성을 다한 종으로써 살 수 있는 지혜.

이 두개가 나에겐 가장 필요했고, 구했다.

하나님이 이 지혜를 주시리라 믿는다.

 

# 세번째 파트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 야고보서 1장 12~15

 

이 부분이 진짜 미칠것같은 소름이다.

이 음란함으로부터 멀어지는 시험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에 충실하는 시험을 이겨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누구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는데, 성경 전체를 보면 그래도 친히 시험을 했던 몇 가지 사건들이 있긴했다.

3군데 정도? 지금 당장에 생각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던 케이스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성경이 쓰여진 인류사 4100년정도의 시간동안에 약 3건이라면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 아닌가.

정말 유니크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시험의 원인은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나의 시험은 나의 욕심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내 스스로 알고있다.

이 성경을 보기 전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이말은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은 단순히 육체적인 사망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망은 차치하더라도 내 욕심으로 부터 비롯된 이 시험을 나는 이겨내고 싶다. 그리고 이겨낼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고, 말씀으로 부어주실 것이니깐.

내가 모르는거를 알려주시면서 지혜를 채워주실 것이니깐.

 

# 네번째 파트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 야고보서 1장 19~21

 

전체적인 내 자신의 연대기를 돌아보았을때, 나는 성내는 것이 없다시피 한 사람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후반부터 어머니 한테만 성내는것이 엄청났었고, 2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그 동안 쌓여있던 것이 폭발이라도 한듯, 거의 대부분의 것에 있어서 성내는 것이 있어졌다.

심지어 그 성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정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듣기는 때로는 아예 차단해버리며 성내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을정도로 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니

게다가 뒤에 기술된 문장의 표현으로 보아서 성낸다는 것 자체의 근본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경험상, 모든 성냄으로써 해결되는 일이 3개라면, 오히려 일이 꼬여버린 경우는 9천건이 넘었다.

나의 성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다섯번째 파트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야고보서 1장 22~25

 

내 스스로 '맞아'라고 하면서도 그냥 흘려지나갔던 적은 수도 없이 많다.

공부가 되었든, 하나님앞의 태도가 되었든, 음란함이든 하나님을 범죄하는 태도 앞에서든 말이다.

그 만큼 내 자신을 속이고,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실행하겠다. 이 범죄함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써의 삶을 살기로 실행할 것이다.

 

# 마지막 파트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은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 야고보서 1장 26~27

 

그 동안 '옳다'라는 주장하에 사람을 말로 죽였던 것이 한두건이 아니다.

그럴때마다 나 스스로는 내심 스스로는 경건하다 하여서 말한 것들이였으나, 나의 혀에는 재갈이 필요했다.

기존에도 십일조를 난민 및 선교사를 위해서 써왔는데 고아와 과부를 위한 도움도 바로 찾고 실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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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스스로는 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에게 언제나 말씀을 갈구하는 마음을 부어주시고

매번은 아니지만, 정말 때가 왔을때 말씀을 부어주시는 은혜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돌에 글씨를 새기듯이 새겨져서 죽기까지 잊지 않도록 은혜로써 함께하여주세요.

말씀을 주셨으니, 이제는 이 말씀으로 일어나서 다시 이겨나가고 이번에는 이 인내를 끝까지 해내므로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상급을 받기까지 이를 수 있는 행함을 허락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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